평화 언론 리포트
수팔락 간자나쿤디, 태국 탐마삿 대학교 쁘리디 파놈묭 국제대학 방문연구원, 전 더 네이션 편집장
대표님, 귀빈 및 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태국 방콕에 위치한 탐마삿 대학교 쁘리디 파놈용 국제대학의 방문연구원 수팔락입니다. 오늘 평화 프로세스를 기념하기 위해 ‘태국 남부: 평화 회담의 연속, 그러나 현실과는 먼 거리’를 주제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태국 당국과 민족해방전선 또는 BRN(Barisan Revolusi Nasional)이라 불리는 분리주의 단체가 4월 초 원칙적인 합의를 통해 라마단 성월 기간 동안 임시 휴전하기로 협의하면서 다사다난한 태국 남부지방에 평화가 올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 프로세스를 통해 얼마만큼의 진전을 이뤄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구심이 큰 상황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제가 HWPL의 평화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태국 남부의 평화 프로세스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폭력 사태가 빈번한 지역에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국제적 노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2004년 초 이래로 태국 내 무슬림이 다수인 지역에서 21,000건의 분쟁으로 인해 약 7,300명이 목숨을 잃었고 13,000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이와 같은 폭력 사태는 특히 태국-말레이시아 접경지역인 태국 최남단의 빠따니, 얄라, 나라티왓 3개 주(州)와 송클라주 일부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무력 분쟁의 근본 원인을 살펴보려면 약 한 세기 전, 씨암으로 불리던 태국 왕국이 말레이 무슬림 다수 거주 지역을 합병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방콕 엘리트 계층은 무슬림 반군 투쟁의 근본 원인이 민족 종교적 정체성이 뚜렷한 사람들의 감정에서 비롯되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해당 지역의 인구는 대다수 무슬림 말레이인으로 불교 신도가 대부분인 태국에서 자신의 특별한 삶의 방식을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많은 태국 엘리트 사람들은 범죄와 지역 내 정쟁을 폭력 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습니다. 태국 당국은 무력 행사를 진압하기 위해 수색섬멸 작전에 의존해왔지만 평화를 되찾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평화를 회복하려는 과거 시도는 실효성이 적었습니다. 태국 정부가 2013년 처음으로 평화 회담을 열었던 당시에는 잉락 친나왓 총리가 집권 중이었습니다. BRN 측과 총 세 차례의 회담이 진행되었고 이를 통해 양측은 서로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갔지만 어떠한 결과를 도출해내지는 못했습니다. 실패 원인은 부실한 회담 관리와 더 크게는 방콕의 혼란스러운 정치적 상황이었습니다. 2014년, 잉락 총리는 평화를 위한 시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던 여러 장군에 의해 실각되었습니다.
쁘라윳 짠오차 장군 휘하의 군부정권은 분쟁지역의 평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국제적 이미지를 갖추고자 했지만, 평화를 향한 구체적인 진전 없이 수석 협상가만 3번 교체했습니다. 2014~2019년 집권한 군부정권은 딥 사우스라 불리는 남부 지역에서의 평화라는 대의를 옹호한다면서도 평화 회담에 대한 명확한 정책은 없었습니다. 해당 분쟁지역을 관리하던 군 지휘관들이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2019년 10월 새로 부임한 완롭 룩사노 수석 협상가는 BRN과의 회의에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여러 옵서버 및 전문가들은 전 국가안전보장회의 의장이었던 완롭 수석 협상가를 평화를 위해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지역 요구에 따라 계획을 조정할 마음이 있는 유연한 사람이라고 평했습니다.
말레이시아의 도움으로 가장 최근에 이뤄진 휴전협정인 라마단 평화 이니셔티브에서 양측은 라마단 단식 기간인 올해 5월 14일까지 폭력 사태를 멈추기로 약속했습니다. 양측 모두 이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공식 문서에 서명하지 않는 신사협정 방식으로 이뤄진 이 협정 덕분에 BRN 분리주의자들은 성월 기간 동안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시적인 휴전이 오랜 기간 지속된 무력 갈등을 종식시키기에는 역부족인 이유가 여럿 있습니다. 첫째, 양측의 실질적인 휴전협정 이행 여부를 판가름하는 것은 시기상조입니다. BRN이 현장에 있는 신규 전투원을 통제하지 못할 여지도 있고 태국 군이 수색섬멸 작전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애초에 휴전협정에 동의하지 않은 반군 세력이 있어서 협정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4월 18일과 19일, 빠따니 및 나라티왓주에서 무장 괴한의 공격으로 인해 1명이 죽고 1명이 다쳤습니다.
둘째, 휴전협정이 향후 우호적인 논의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지만 태국 당국은 한 걸음 더 나아간 정치적 회담은 꺼리는 태도를 일관해 왔습니다. 일부 정부 관계자에 의하면 당국은 분리주의자들을 동등한 입지로 격상시키고 싶지 않아 한다고 합니다.
셋째, 양측 간 신뢰를 위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정부 측의 조력으로 휴전협정이 이루어졌지만, 태국은 평화 프로세스가 국제 문제로 번지는 것을 우려하는 입장입니다. 따라서 태국 측은 국제 옵서버의 참여를 거절했습니다. 태국 측의 이러한 태도는 국제사회가 휴전협정의 이행과 검증을 직접 목도할 수 없게 만듭니다.
넷째, 무슬림 말레이인들은 일정 수준의 자치권을 요구하고 있지만 태국 당국은 태국으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우려하여 어떠한 방식의 자결권도 논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자치권과 독립은 태국 엘리트 사이에서는 금기시되는 단어입니다. 엘리트 계층은 항상 통일국가와 불가분 토지의 개념을 고수합니다.
결론적으로, 평화 회담의 역사를 통해 어떠한 평화 프로세스이든 이를 통해 항구적인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은 명확해졌지만,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야 합니다. 동시에 민주화 과정을 거쳐 이해관계자 뿐만이 아닌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태국 당국은 평화 프로세스에 시민사회 참여를 허용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잠시 필리핀 민다나오에서의 평화 프로세스 사례를 통해 어떻게 국제 시민사회가 평화 프로세스에 참여하는지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2014년, 국제 평화 NGO인 HWPL은 민다나오 지역 대표 간의 평화협정을 제안하며 민다나오 분쟁을 중재했습니다. 이만희 HWPL 대표가 현장에서 목도한 평화협정에는 당시 마긴다나오 주지사였던 이스마엘 G. 망구다다투 주지사와 다바오 교구의 명예 대주교인 페르난도 카펠라가 양측 대표로서 서명했습니다. 이후 마긴다나오주와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은 1월 24일을 ‘HWPL 평화의 날’로 선포하였고 매년 이날을 민다나오 내 평화구축을 위한 지역 파트너십과 국제 협력을 재확인하는 연례행사로 기념해 오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 치룬 평화 행사로는 3월 14일, 5천여 명의 참가자들이 함께한 ‘HWPL 지구촌 전쟁종식 평화 선언문 제6주년 기념식’이 있었고 행사 주제는 ‘제도로서의 평화: 평화 구축의 법적 기반’이었습니다.
UN 산하 NGO인 HWPL은 각 사회에서 평화의 제도화라는 결실로 이어지는 정부와 시민사회 간의 공동의 노력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2016년 공표한 DPCW는 시민이 주도하는 평화 촉구 활동에 지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는 UN, 아프리카연합(AU), 유럽연합(EU)을 비롯한 국제기구들이 주요 분쟁 해결의 기준으로서의 규범적 지침과 여성과 청년의 참여를 강조하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이는 평화를 위한 일입니다. 지금까지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